오픈스트리트맵(OpenStreetMap, 누구나 고칠 수 있는 무료 세계 지도)을 열어 평양 시내를 확대해 보면 꽤 낯선 풍경이 나온다. 큰 도로와 건물 윤곽은 물론이고 동네 개고기집이나 떡국집 이름까지 세세하게 찍혀 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북한 주민 대부분은 외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 연구 목적으로 허가받은 극소수를 빼면 ‘광명’이라는 내부 인트라넷만 쓸 수 있다.

지도에 찍히는 식당 이름이나 골목길 정보는 보통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 직접 올린다. 그런데 정작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지도에 접속조차 못 한다면 평양 시내의 저 수많은 점들은 대체 누가 찍은 걸까. 북한 당국이 조직적으로 그렸을까 아니면 바깥세상의 누군가가 대신 채워 넣었을까.

연구자 소원영은 Cartographers of North Korea 프로젝트에서 이 질문을 끝까지 파고들었다. 2007년부터 쌓인 편집 기록을 전부 뜯어보고 북한 지역을 한 번이라도 고친 기여자 889명 전원에게 설문 편지를 보냈다. 돌아온 211통의 답장을 따라가다 보면 인터넷이 막힌 땅의 지도가 어떻게 채워지는지, 또 지도를 그리는 사람과 그 땅에 사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또렷하게 보인다.

열 명이 지도의 61퍼센트를 그렸다

북한 지도 데이터 324,415개 중 61퍼센트를 상위 10명이, 나머지 39퍼센트를 879명이 그렸다는 것을 막대로 비교한 그림
889명이 참여했지만 지도의 대부분은 10명의 손에서 나왔다.

2007년 이후 북한 지역에 참여자 889명이 남긴 지도 데이터는 모두 324,415개다. 인터넷이 닫힌 나라치고는 놀라울 만큼 촘촘하다. 공군 기지에 세워진 미그-19 전투기 8대의 위치부터 서해 위성발사장, 김일성 동상 같은 지점까지 다 올라와 있다.

다만 889명이 고르게 그린 건 아니다. 상위 10명이 전체 데이터의 61퍼센트를 그렸다. 소수의 열성 기여자가 판을 깔고 나머지 다수가 조금씩 보태는 전형적인 멱법칙(power law, 소수에게 결과가 집중되는 분포) 구조다.

재미있는 건 기여자의 62퍼센트가 지명을 한국어로 적었다는 점이다. 상위 5명도 모두 한국어 사용자다. 언뜻 보면 북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나 한국인이 주축일 것 같지만 편집 이력을 열어 보면 딴판이다. 한국어로 지명을 적은 상위 20명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 독일, 인도, 미국, 남한 지도도 활발하게 고쳤다. 상위 5명의 주 활동 무대 역시 인도, 독일, 우크라이나, 러시아, 일본이었다. 전 세계 지도를 취미로 그리는 헤비 매퍼들이 북한에도 들러 손을 보탠 것이다.

안락의자에서 위성사진을 따라 그린다

위성사진, 방문 기억과 사진, 공개 자료가 각각 도로·건물 윤곽, 가게와 명소, 지명으로 이어지고, 건물 용도와 현장 확인은 비어 있는 그림
건물 용도와 현장 확인은 바깥의 자료로 채우지 못했다.

답장을 보낸 211명의 작업 방식은 대부분 비슷했다. 빙(Bing)이나 디지털글로브(DigitalGlobe)가 무료로 풀어 놓은 위성사진을 편집기 밑에 깔고 그 위로 도로와 강, 건물 테두리를 따라 그린다. 한 독일 기여자는 이를 두고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지도를 그린다는 뜻에서 ‘안락의자 매핑’이라고 불렀다.

위성사진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가게 이름이나 시설 정보는 온갖 곳에서 끌어모았다. 북한을 직접 여행했던 사람들은 당시 찍어 온 사진과 기억을 더듬어 호텔과 식당을 찍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도 미리 위치를 기록했다가 나중에 올릴 수 있는 앱(MAPS.ME)을 써서 흔적을 남긴 방문객도 있었다. 한 우크라이나 기여자는 건물 안 지명 대부분을 위키매피아에서 옮겨 적었고 북한 잡지에 실린 사진과 위성사진을 대조해 가며 건물을 입체로 구현하기도 했다.

평양 지도가 유독 자세한 이유도 한 네덜란드 초기 기여자의 답장에서 풀렸다. 그는 2000년대 초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당시 구글 지도나 야후 지도에서 평양은 그저 하얀 공백이었다. 반면 빙에는 유독 평양 시내만 선명한 항공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그 사진을 보고 거리를 그려 넣은 뒤 자기가 직접 들렀던 호텔과 박물관을 하나씩 찍었다. 오픈스트리트맵의 힘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다.

혹시 북한 정부가 사람들을 동원해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데이터 앞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한 독일 기여자는 아예 자기 작업량을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하루 종일 지도만 그리는 전담 직원이라면 두 달에 점 48,000개는 찍어야 한다. 취미로 그리는 자신도 4년 동안 두 달 평균 25,000개를 그렸다. 그런데 북한 지도 상위 10명의 작업량은 그 취미 기준의 66퍼센트 수준에 머물렀다. 국가 조직이 붙었다고 보기엔 턱없이 적은 숫자다.

스도쿠를 풀듯 그리거나 탈출로를 그리거나

그리는 이유를 재미와 빈 지도, 분단의 기억과 통일 이후, 인권 기록, 탈출 경로 네 가지로 나누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지도에 거는 무게가 커지는 그림
그리는 이유는 재미, 분단의 기억, 인권 기록, 탈출 경로로 나뉜다.

왜 연고도 없는 북한 지도를 그리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돌아온 답은 의외로 “재미있어서”였다. 독일의 한 기여자는 스도쿠를 풀거나 만다라를 색칠하듯 강과 도로를 따라 그린다고 했다. 이미 다 채워진 독일 지도는 이제 교차로 통행 규칙이나 건물 번지수 같은 자잘한 수정만 남았지만 북한은 텅 빈 도화지 같아서 굵직한 도로와 강줄기를 처음부터 그리는 손맛이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 자기 동네 지도를 처음 채우던 시절이 그리워 북한으로 넘어왔다는 독일 개발자도 있었고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신니’라는 작은 마을이 유독 비어 있길래 아무 이유 없이 거기서부터 지도를 넓혀 갔다는 아일랜드 기여자도 있었다.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재난 구호용 지도를 그리던 한 참가자는 “어디를 그려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를 고민하다 북한까지 오게 됐다.

개인적인 가족사나 분단의 기억을 꺼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옛 동독 국경 근처에 산다는 기여자는 냉전 시절 동독 정부가 일부러 길을 틀리게 인쇄한 지도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거짓 지도는 사라져야 한다고 적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기여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북한군 박격포 파편을 몸에 박힌 채 돌아와 평생 고생하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북한 땅에 도로와 기반 시설을 놓을 지도가 필요할 거라며 묵묵히 지도를 채운다.

더 절박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체코의 한 기여자는 인권 문제를 기록하려고 정치범 수용소를 찾아 그렸다. 외부에서 수용소 내부를 들여다볼 방법이 거의 없으니 위성사진으로나마 건물 배치를 지도에 남겨 두겠다는 생각이었다. 요덕 수용소나 화성 제16호 관리소를 그렸다는 답장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건 탈북 경로가 될 만한 국경 지대를 집중적으로 그린 기여자였다. 그는 두만강 양쪽의 철책과 오솔길, 강변 마을을 샅샅이 그렸는데 풍서리 일대의 상세한 지도는 거의 혼자서 완성했다고 한다. 작업할 장소를 고르는 기준도 명확했다. 북한 주민이 걸어서 닿기 쉬운지, 숨어들 만한 민가가 주변에 있는지, 그리고 강을 건너기 쉬운지였다. 강폭이 넓은 압록강 대신 두만강 일대를 택한 이유다.

바깥에서 그린 지도는 누구에게 닿을까

지도를 그리는 바깥의 기여자, 지금 쓰는 연구자와 언론, 그리고 지도에 닿지 못하는 북한 주민을 나란히 놓고 북한 주민 쪽만 끊어진 선으로 표시한 그림
지도는 공개돼 있지만 정작 그 땅에 사는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다.

하지만 두만강 탈출로를 그린 그 기여자도 바깥에서 지도를 그리는 일의 한계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위성사진으로 건물 네모 칸은 그릴 수 있어도 그 안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마당을 둘러싼 큰 건물이 평범한 협동농장인지 군부대 막사인지 사진만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 정작 탈북민에게 가장 위험한 시설일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셈이다. 중국 쪽 국경 철책은 사진에 잘 찍히지도 않아서 가끔 땅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보고 위치를 어림잡아야 했고 화질이 30m급으로 뭉개진 지역은 아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나마 나중에 여러 회사가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기부하면서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기술적인 한계가 아니었다. 이렇게 공들여 그린 지도가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쓰이기는 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막막함이었다. 북한 주민은 이 지도에 접속할 수 없다. 그는 중국에서 밀수된 스마트폰에 누군가 오프라인 지도 파일을 담아 몰래 볼지도 모른다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 하나를 붙잡고 작업을 이어 갔다.

선의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고민도 있었다. 한 독일 기여자는 연구자의 메일을 받고 답장을 보낼지 말지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자기는 그저 눈에 보이는 시골 마을 몇 개를 그렸을 뿐인데 혹시라도 북한 당국이 그 지도를 보고 그 마을 주민 누군가를 간첩으로 몰아세우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는 것이다. 현장에 발을 딛지 않은 외부인의 데이터가 누구를 돕고 누구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결국 지금 이 지도를 가장 활발하게 쓰는 건 북한 바깥의 사람들이다. 철새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조류학자들이 이 지도를 연구에 썼다는 보고서가 나왔고 국내 언론사와 지리 정보 시스템(GIS) 연구자들도 이 데이터를 가져다 쓴다. 한국의 한 대학생 기여자는 국내 연구자들이 저작권이나 공간정보관리법 걱정 없이 북한 지도를 쓸 수 있도록 광복 직후의 옛 지도와 저작권이 만료된 해외 지도를 뒤져 가며 지명을 채워 넣었다. 위키백과로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역사를 대조하고 최신 위성사진에 맞춰 현재 모습으로 고치는 식이었다.

모양은 밖에서 그려도 의미는 안에서 채워진다

결국 오픈스트리트맵의 북한 지도는 북한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독일과 우크라이나, 미국, 한국의 방 안에서 위성사진을 띄워 놓은 사람들이 퍼즐을 푸는 재미부터 통일 준비, 인권 기록, 탈출로 확보까지 각자의 마음을 담아 한 땀씩 찍어 낸 결과물이다.

한국에 살았던 한 외국인 기여자는 한국 지도 서비스들이 군사 시설을 숲이나 빈터로 가려 놓는 것과 달리 오픈스트리트맵은 위성에서 보이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기록한다는 점이 좋았다고 적었다. 실제로 위성사진과 공개 자료만으로도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땅의 골격을 이만큼이나 복원해 낼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래도 마지막 빈칸은 끝내 남는다. 위성사진으로 길의 모양과 건물의 크기는 그릴 수 있어도 그 건물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이고 그 길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현장에 사는 사람만이 채울 수 있다. 지금 북한 지도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읽지도 고치지도 못하는 지도다. 바깥의 지도 제작자들은 자기 작업이 누구에게 닿을지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위성사진 위에 선을 긋고 있다. 언젠가 그 땅의 주민들이 직접 자기 동네 지도를 고칠 날이 올 때까지 빈자리를 먼저 채워 두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